젊은 날의 시노트
조영관 시인의 젊은 시절 시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는 공간입니다.



작성자 관리자(admin) 시간 2019-01-21 00:45:43
네이버
첨부파일 :
이중섭_달과까마귀.jpg

그림 이중섭의 <달과까마귀>


웬일이냐


 


친구야 기다린다니 도대체 웬 말이냐


시계를 보니 자정이 훨씬 넘어섰는데


눈송이가 깃털처럼 이렇게 휘날리는데


뱃속에서는 드디어


한강철교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친구야.   



이제 오가는 이 아무도 없는데


악착스럽기보다도 순진하구나 친구야


쌓여 가는 눈만큼 세상은 텅 비어 가고 


저 눈송이처럼 이리저리 섞이지 못하는 건


어떤 질긴 끈이 달린 사랑 때문이더냐.



무사히 풀려난 너를 보고 우린 신바람이 났는데


푹 꺼져 투명한 너의 눈을 보고


우리의 반가움은 죄책감과 부끄러움으로 떨었다.


친구야 그래도 늦게나마 우리는 곰곰이


생각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.



친구야 감정과 논리가, 눈물과 주먹이


그리고 이념과 생활이 똑 같은 태생이면서도


그 얼마나 양립시키기가 어려운 것인지,


얼마나 감정이 굳고 아름다워야 눈물과 주먹을


감싸안고 갈 수 있는 것인지, 


생활이 얼마나 아름다워야 뜻이 불꽃처럼


순결할 수 있는 것인가를.



그렇다고 친구야 약속시간이 벌써


두 시간이 넘어섰는데 기다린다는 게 웬 말이냐.


적당하게 넘어가는 여유의 거짓이야


우리도 너무 잘 알지. 


하지만 붐비는 바람이 이렇게


우리의 얼굴을 짓쪼며 지나가는데


밧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너의 웃음이


끔찍스럽다가는 드디어 내가 부끄럽구나 친구야.

SITE MAP